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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

♡푸른산책♡ 2018. 2. 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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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늘

뒤뜰에 산벚꽃, 앞산에 산벚꽃,산벚꽃 피어서 화사한 날은 

마음도 꽃잎처럼 흩날립니다.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꽃가지에 마음의 겉옷을 벗어 걸어놓고 누구랑 연애라도 하고 싶습니다.

바람의 손에 이끌려 이 나무 저 나무 꽃그늘로 옮겨다니는 이 마음이 이미 바람입니다.

자두나무꽃 하얗게 피어 척척 늘어지는 다디단 향기가 내몸을 칭칭 감는 것 같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까지 세다가 다섯 잎의 하얀 꽃잎이 동그랗게 모여 피워내는

자두꽃 향기에 취해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에 입술을 대어 봅니다.

촉촉한 자두꽃 젖꼭지에 닿은 제 입술이 파르르 떨립니다.

 

산벚나무꽃은 제 향기에 취했는지 제가 만든 꽃그늘에 취했는지

새로 돋아난 어린 이파리의 목까지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게 보입니다.(중략)

 

산벚나무꽃을 가슴에 안아봅니다. 그러나 팔 안에 담기는 향기의 적막한 공간.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의 가운데는 비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꽃과의 거리는 여기까지인가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꽃을 사랑하는 동안
꽃잎은 찢어져 뭉
개지고 꽃가지는 꺾인 채 내 손에 들려 있게 되겠지요.

꽃을 사랑하여 꽃이 제 깊은 곳에서 내어준 꿀까지 가져가되 

꽃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는 벌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비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꽃은 꽃대로 향기롭고 나비는 나비대로 아름다운 사랑,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함께 있어도 아름다운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여름 숲의 보시

여름 숲은 크고 작은 풀과 나무들로 꽉 차 있습니다.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것들대로 충만합니다.

맨 밑바닥에는 코끼풀, 민들레, 질경이 같은 풀들이 자라고

그 위에는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참나무류의 키 큰 나무와 관목들 사이에는 또 거기 자라기 알맞은 중간 키의 나무들이 들어서있습니다.

서로 다른 높이를 가진 나무와 풀들이 층을 이루며 차곡차곡 채워져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공간을 나누어 갖고 공존합니다.

그래서 더욱 숲은 풍성합니다.

소나무숲처럼 다른 것들이 들어와 살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숲은 각박합니다.

소나무숲에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합니다.소나무들도 푸르른 기품이 없는건 아니지만 

배타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이 서로 더불어 공존하고 그래서 풍성해지는 숲이 진짜 숲입니다.
토끼같은 작은 것들은 낮은 곳의 풀을 먹고, 고라니나 노루는 그보다 더 조금 큰 나무의 잎을 먹으며,
키 큰 나무는 새들에게 제 열매를 주어 멀리까지 씨를 퍼뜨립니다.

차윤정 박사는 여름 숲의 울창한 나무 잎들이 다른 생멸들에게 얼마나 축복인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무가 열 장의 잎을 생산한다면 그중에는 여분의 잎이 있다.

열장 중 두 장은 자신의 성장에 쓰인다.또다른 두 장은 각각 꽃과 씨앗을 만드는데 쓰인다.

다른 두 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물질을 만드는 데 쓰인다.

또다른 두장은 스스로에게 저장되는 몫이며 나머지 두 장은 숲의 다른 생물들을 위한 것이다."』

 

두 장의 잎을 애벌레가 먹고 그 애벌레를 새가 먹으며, 작은 짐승이 먹기도 하는데 그래도 남으면 

낙엽으로 땅에 내려 수많은 벌레와 미생물들이 먹게 하고 그 미생물들이 먹고 배설한 것을
거름으로 삼아 
나무를 키우는 이 보시의 순환

숲은 우리가 어떻게 가진 것을 나누며 공생해야 하는가를 아주 잘 가르쳐줍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몇 개의 잎을 다른 생명들에게 주면서 살고 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게 합니다.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세요

사람들에게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생 지금보다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돈에 매여 삽니다.

어느 정도의 지위가 필요하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느 정도의 힘, 어느 정도의 명예가 필요하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조금 더' 그렇지요. 조금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늘 그것에 매여 삽니다.

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순간순간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은 게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그날 그날이 행복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 상태로도 만족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도 남을 도와주고 베풀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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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님의 글을 읽을때면 항상 행복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안(淸安)해진다.

내가 콘크리트 아파트 안에 사는게 아니라 산속 어느 골짜기에서 

사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도 나한텐 그러한 책이라 읽고 또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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